시의 화자는 오월 어느 날 마로니에 활짝 핀 공원에 앉아 꽃을 바라봅니다. 그 순간 꽃은 단순한 꽃이 아닙니다. 시인이 애타게 그리워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꽃을 보고 그 꽃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순간 꽃은 또 다른 의미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시인을 일러 제 2의 창조자라고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한 것은 바로 이러한 부분을 두고 말하는 것일 겁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사물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자 권리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일 겁니다.
이 시편을 주의 깊게 읽은 분이라면 어느 먼 훗날 어디선가 마로니에 꽃핀 그늘을 지날 때면 마로니에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올 것입니다. 단순한 마로니에 한 그루가 아니라 애틋한 어떤 사람 이야기로 말이지요.
또한 시 속에서 시의 화자는 못할 것이 없습니다. 논리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것이 시라고 어떤 논자는 말합니다. 철학은 논리에 맞지 않으면 진리로 인정받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시는 논리 밖에서도 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시 한 편 속에서 시인은 나무도 되고. 하늘을 나는 새도 되고, 이슬 한 방울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의 눈 속에 고여 들기도 합니다.
이것이 시의 존재 의미이고, 시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를 쓰는 일은 우리가 다시 태어나는 일이고 세상을 이끌어 가는 일입니다. 과거의 나를 벗고, 유약한 나를 벗고, 자유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길이기도 합니다. 시를 쓰는 일은 진정한 코칭이고 위로의 행위입니다.
